프랑스의 해외영토

프랑스의 해외영토

프랑스는 유럽외의 대륙에 위치하고 있는 프랑스 영토 덕분에 전세계적으로 영토를 가지고 있는 국가가 되었다. 프랑스 본토외의 영토는 인도양, 대서양, 태평양에 걸쳐있으며 심지어 남극의 빙하에서 아마존의 삼림지역에까지 걸쳐있다.

해외령 프랑스 영토의 가장 큰특징은 몇가지 특색적인 것으로 환원될 수 없는 그 다양성에 있다고 하겠다. 대조적인 기후, 경치, 동식물군의 다양성은 물론, 세계에 열린 시민 공화국인 프랑스의 주민이 된 거주민들의 문화, 정체성역시 극도로 다양하다.

노예제도폐지, 보통선거제도 채택, 사회적평등을 위한 노력등이 1세기반 이전부터 이 해외도(海外道)지역(DOM)의 중요한 변화의 여정이다. 과거 프랑스소유지였던 이 지역들이 본토프랑스와 같은 공식적인 행정구역으로 배정되고 현재의 도, 지역, 자치단체들을 구성하기에 이르기까지, 프랑스 공화국의 역사와 이지역의 역사를 접맥하는 작업들이 지속적으로 진행중이다.

해외도의 영토가 프랑스공화국의 다양성의 대표적인 산실이라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마르티니크, 과두루프, 기아나, 레이니용이 프랑스의 4개의 해외도이다. 해외도의 자격으로 이 영토들은 프랑스 본토와 꼭 같은 법앞의 평등과 참정권을 갖는다. 물론 그들 고유의 특수상황을 고려해서, 필요하다면 변동을 시킬수도 있는 가능성도 있다. 프랑스 헌법은 이들이 행정권 편입에 있어서 다양한 위상중에 선택할 수 있도록, 여러 가지 제도적 가능성을 마련했고 실제로 이들 지역이 시도하고 있는 변화과정, 특히 뉴칼레도니아, 프랑스령 폴리네시아나 마이요트지역에서 진행되는 변화과정이 바로 그런 가능성을 적용한 예이다.

해외도 주민이 선택한 서로 다른 발전과 변화의 방향에 대해서 프랑스공화국은 이 지역 주민들이 스스로에게 부여한 시민으로서의 책임감을 이행하는 수행자로서, 더 나아가 그지역의 운명의 개척자가 되는데에 필요한 지원책을 제공해주고 있다.

인도양
레니이용

레이니용 섬은 마다가스카르 섬의 일부로 열대림과 최고봉이 3069m에 이르는 위용을 자랑하는 화산지형의 산맥으로 구성되어 있는 다채로운 섬이다. 1638년 세인트 알렉시스호가 인도로 향하던중 무인도였던 이 섬을 루이 13 세의 명으로 점유한다. 1946년에 레이니용섬은 프랑스의 행정구역인 도가 된 다.

면적이 2512㎢인 이 섬의 인구는 7십만 6천3백여명으로 다양한 인종의 혼합된 구성을 보인다. 아프리카, 아시아, 마다가스카르, 유럽인들이 주민으로 전체 해외도중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지역이다.

이섬은 최고의 자연환경덕택에 7000헥타르에 이르는 생물자원보고가 형성되어 있다.

레이니용의 경제는 다음의 3가지 분야가 주력분야이다. 사탕수수, 럼주, 식물에센스 채취를 중점으로 하는 농업과 이 3가지의 농업분야에 이어 4번째 수출품목을 차지하는 어업과 관광업이 그것이다.

레이니용에는 특히 푸르네즈 정상에 위치한 화산학연구소와 인도양에서 발생하는 사이클론의 주기연구를 담당하고 있는 기상연구소가 위치하고 있다.

마이요트

마이요트는 코모레스군도의 4개의 섬중에서 가장 남쪽에 위치한 섬이다. 374㎢에 이르는 면적에 13만5천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두 개의 주요섬과 30여개에 이르는 작은 섬들이 마요트를 이루고 있다.

"향수의 섬"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마요트는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산호초의 하나라고 알려진 1100㎞에 이르는 산호초로도 유명하다.

1841년에 마요트의 술탄은 코모레스군도를 프랑스에 인도하고 이군도는 이렇게 프랑스의 식민지의 일부가 된다. 1946년 코모레스 군도는 프랑스의 해외도가 된다. 1974년 국민투표에 의해서 4개의 섬중의 3개의 섬은 독립을 선택하고 마요트는 프랑스로 남는다. 마요트인들의 프랑스에 대한 애착심은 더욱 강해지고 1998년부터 행정구역인 도로 편입되기 위한 절차를 밟고 있다.

마요트의 경제는 농업에 기반을 두고 있다. 특히 3가지 작물의 수출이 중심을 이루는데 그것은 향수제조에 사용되는 일랑일랑(수출의 4분의3을 차지), 바닐라, 계피이다.

그런가하면 산업화되지않은 관광코스는 자연과 문화의 경관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게 해 준다.

대서양
마르티니크

마 르티니크제도는 1100㎢의 면적으로 프랑스의 해외도중에 가장 면적이 적다. 위치는 카리브해에서 호를 이루는 안티이 제도의 중앙부에 위치하고 있다. 화산섬으로 기복이 있는 지형은 다양한 풍경을 제공한다. 1397m에 이르는 펠레섬은 화산섬으로 1902년의 분출은 이 섬의 역사에 남을 만한 것이었다. 38만1천400명의 인구는 아메리카 흑인, 이주인디언의 후예, 시리아, 중국인등 여러 다양한 혼합인종으로 구성되어있다. 주민중 백인은 베케(B k )라 불리는 초기 식민지배자들의 후예나 프랑스 본토출신이다.

초기에 이 섬은 아라와크인디언들이 살고 있었다. 그러나 1674년에 당시 프랑스왕국의 식민지가 된다. 빅토르 슈로더의 제안에따라 1848년 4월 27일령으로 노예제도가 폐지된다. 1946년 이후로 라마르티니크는 해외도가 된다.

주민의 75%가 3차산업에 종사하며 농업이 수출의 중요부분을 차지한다. 바나나가 가장 중요한 수출품이며 경제원이다. 바나나농업은 총농산물 수확에서 49,5%를 차지하며 수출액의 거의 40%를 차지한다. 관광산업역시 상당히 발전해서 11000여명이 이 분야에서 일하며 전체 국내시장총생산의 7%의 매출을 올린다.

과두루프

총 1704㎢에 달하는 과두루프 군도는 6개의 섬으로 이루어져있다. 라 수프리에르라는 1484m고도의 화산이 솟은 바스테르(Basse-Terre)와 연결된 일반적으로 과두루프라 부르는 섬, 그랑드 테르(Grande-Terre), 라 데지라드 (la Desirade), 레 셍트(les Saintes), 마리 갈랑트(Marie-Galante), 셍바르텔레미(Saint-Barthelemy)와 프랑스령 셍마르텡 (Saint-Martin)이 있다. 안티이와 카라이브가 이루는 아치상에 위치하는 과두루프본토는 1438㎢에 이르는 프랑스령 안티이제도중에 가장 큰 섬으로 주민의 수는 42만2500명이다.

원래, 이섬의 거주자는 아라와크 인디언이었다. 1674년 이 섬은 프랑스의 식민지가 되고 이후에 경제는 설탕농사와 노예매매가 주를 이룬다. 빅토르 쇼엘세르의 제안에 따라 1848년 4월27일령에 의해서 노예제도가 폐지된다. 1946년에는 해외도로 편입된다.

과두루프의 경제는 바나나농업을 중심으로한 농업과 관광, 서비스업이다.

이 해외도의 최대의 경제활동은 관광으로 셍-마르텡과 셍-바르텔레미섬의 거의 유일한 경제원이기도 하다.

기아나

남미의 북동쪽, 수리남과 브라질사이에 위치한 기아나의 면적은 90 000㎢에 달한다. 적도의 밀림이 9/10를 차지한다. 이 지역이 바로 프랑스 해외령중에서 가장 넓고 숲이 우거진 지역이다. 1992년 리오데자네이로에서 개최된 리오환경의에서 프랑스는 이 지역을 열대림보호와 생태발전 모델이 중심축으로 삼아줄 것을 제시한 바 있다.

15만7천213명이 거주하는데 이중 5만여명은 케이엔에 거주하며 기아나의 인구밀도는 ㎢당 2명이다. 다양한 민족이 모여사는 이 지역에 주를 이루는 민족은 인구의 40%를 차지하는 기아나의 크레올인이며 아메리카 인디언과 프랑스 본토인들 그리고 후몽인들이다.

기아나의 첫 주민들은 투피 가라니인디언이었다. 1852년에 나폴레옹3세가 프랑스의 감옥을 이 섬에 옮기는 결정을 내렸고 유형수를 보내던 관습은 1938년에 막을 내렸다. 기아나는 1946년 3월 19일의 법령에 따라 프랑스의 해외도로 편입된다.

우주공학시대로 접어들면서 1964년에 기아나에 프랑스 항공우주센터가 설치되고 이로 말미암아 이 지역이 활성화되었다. 구루의 기지는 지역경제에 중요한 기여를 한다.

기상천외의 환경과 모험, 자연학습의 장인 생태관광이 기아나의 중요한 산업발전 축이 되고 있다.

셍피에르에 미끌롱

셍피에르에 미끌롱군도는 대서양 북서쪽에 캐나다의 해안에서 25㎞떨어진 곳에 위치한다.

2개의 섬으로 구성된 이 군도는 총면적242㎢에 6300여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1535년, 자크 카르티에가 프랑스에서 도착하면서 이섬은 프랑스 영토가 된다. 브르타뉴, 노르망디와 바스크지역에서 간 대부분이 어부출신이었던 이주민들이 셍피에르에 미끌롱을 구성하였다. 이 섬들은 1816년 프랑스령으로 최종적으로 복속되고 1985년에는 해외영토로 편입되었다.

어업이 이 군도의 주 산업활동이다. 최근에는 군도의 어장에서 1단계 석유시추작업이 시작되기도 했다. 시추작업으로 인해 셍피에르에 미끌롱은 새로운 산업적 가능성을 타진해보게 되었다.

관광산업에서 셍피에르에 미끌롱은 케나다와의 근접성이라는 지리적 효과를 누리며 또 북미의 프랑스 영토라는 이미지를 갖게 되었다.

태평양 뉴
칼레도니아

멜라네시아에 넓게 퍼져 분포하는 뉴 칼레도니아는 18 575㎢에 걸쳐 있는 군도이다. 군도는 코르시카섬의 두배인 그랜드 테르, 4개섬으로 구성된 루와이요떼, 벨렙군도, 소나무섬과 몇 개의 흩어진 작은 섬으로 되어있다.

뉴 칼레도니아에는 놀라울 정도로 다양한 경치가 펼쳐지는 땅이다. 인구는 총 20만명으로 44%의 주민은 멜라네시아인이며 34%는 유럽인이다.

멜라네시아인은 뉴칼레도니아의 원주민이다. 제임스 쿡이 1774년 뉴 칼레도니아에 첫발을 내디딘 유럽인으로 1853년에 이땅은 프랑스의 소유가 되었다.

1980년대에 카낙인들의 자치권 요구운동이 거세게 일어났으나 1988년에 양측이 협약에 서명하면서 사회적으로 안정을 되찾고 경제적인 균형도 되찾았다. 1998년이후부터는 아주 독창적인 방식으로 제도적 개혁을 시도 하는 중이다. 2014년이되면 20년이상 뉴 칼레도니아에 거주한 선거권자들을 대상으로 자치적인 주권을 완전히 회복하는 점에 대해 투표를 실시할 것이다.

뉴칼레도니아는 중요한 천연자원을 가지고 있다. 세계에서 3번째 니켈 생산지이며 그밖의 광물인 크롬, 코발트, 철, 구리, 수은, 아연, 벽옥도 풍부하게 저장되어 있다.

농업은 주로 축산업과 커피와 커프라재배로 전체인구의 28%가 이분야에 종사한다. 80%가 참치인 어획량은 주로 일본으로 수출된다. 1996년부터 열대새우류가 뉴 칼레도니아의 두 번째 중요 수출품목으로 부상했다.

관광산업역시 중요한 수입원으로 아름다운 천연자원으로 인해 "천국에서 가장 가까운 섬"이라는 별칭을 가지고 있다.

프랑스령 폴리네시아

전체면적 4200㎢에 이르는 프랑스령 폴리네시아는 2 500 000㎢나 되는 지역에 펼쳐져있는 118개의 섬으로 구성되어있으며 5개의 군도(소시에떼, 마르끼즈, 오스트랄, 뚜아모뚜/감비에)위주로 모여있는 화산섬과 산호초섬이 주를 이룬다.

220000명의 주민중 43%는 20세미만의 연령층이다. 인구분포는 82,8%는 폴리네시아인이며 11,9%가 유럽인, 4,7%가 아시아인이다.

최초의 유럽인은 16세기에 이 지역에 도착했다. 남태평양 폴리네시아의 정복사는 영국과 프랑스간의 주권전쟁으로 그 종말은 여왕 포마레4세가 프랑스의 보호령이기를 요청할 때 까지 지속되었다. 그리고 1년후에 전체 군도가 프랑스 공화국에 복속되었다. 1946년에 폴리네시아는 프랑스의 해외도가 되고 1996년부터는 자치권을 얻었다.

어업과 코프라수출이 전통적으로 주요 산업이다. 상업, 수공업, 산업등 경제활동이 있으며 최근에는 특히 국내총생산의 20%에 달하는 관광산업이 발달했고 흑진주양식이 이지역의 고가의 제1의 수출품목으로 부상했다.

1992년 4월 이후 프랑스가 태평양 핵실험센터에서의 실험을 중단함과 동시에 향후 10년간 폴리네시아의 경제 사회적인 발전을 적극 지원하기로 약속한 바 있다.

왈리스에 푸투나(Wallis-et-Futuna)

세 개의 화산섬 왈리스, 푸투나, 알로피로 이루어진 이군도는 오세아니아 폴리네시아에 속한다.

왈리스섬은 푸투나에서 북서쪽으로 200㎞떨어져 있으며 1767년 이 96㎢가 되는 섬을 처음 발견한 어부의 이름을 딴 것이다. 푸투나의 면적은 64㎢로 이웃의 섬인 알로피의 면적은 51㎢이며, 이 두섬은 1616년에 두명의 네델란드 항해가들에 의해 발견되었다.

14 166명이 거주하는 이 지역의 34%의 인구는 푸투나에 거주한다. 19세기에 이르러서 카톨릭 선교사들과 더불어 유럽인들이 이 섬에 도착하고 프랑스와 세왕국간에는 보호령을 승인하는 조약을 맺는다. 1959년에 투표를 통해 94,37%의 주민이 이 지역이 프랑스의 해외도가 되는 것에 동의한다.

이 지역의 경제는 전통적으로 거의 화폐화되지 않은 상태에 있다. 대부분의 생산물은 내수용이며 교역량은 극히 미미하다. 농업이 중요산업이며 양돈, 어업, 수공업을 한다. 관광산업도 거의 발달되지 않은 상태이다.

남극과 북극의 프랑스령(TAAF)

탐험가 크로제와 케르겔렌이 1772년에 이 지역을 발견했다.

1955년 프랑스영토의 일부가된 남북극의 프랑스령은 7㎢에 이르는 셍폴섬과 54㎢에 이르는 암스테르담섬, 115㎢에 이르는 크로제섬, 7215㎢에 달하는 케르겔렌 섬과 432 000㎢에 이르는 아델리섬으로 이루어져있다. 이섬들은 남인도양과 남극대륙에 걸쳐있다. 고립되었고 사람이 살기에 어려운 이 지역의 인구는 과학과 기술탐사를 목적으로 여러기지에 탐사팀이 주둔하고 있다.

케르겔렌과 아델리섬의 기지에서 프랑스 연구소가 시행하는 극지방 연구차원에서 이미 여러 가지 과학 탐사가 이루어졌다. 이연구는 대기, 기상, 오염문제, 환경, 지층의 내부와 외부, 생물학, 대양학등으로 세계적으로 필요한 연구들이 진행중이다. 이 연구들은 국제적인 협력을 요하기도 한다.

해초, 크릴새우와 연어등이 주종을 이루는 어업이 경제의 기반을 이룬다. 극지방의 영토로 인해 프랑스의 영해는 1 750 000㎞가 늘어났다.

* 더 자세한 정보를 위해서는 www.outre-mer.gouv.fr 사이트를 참조할 것.

publie le 09/08/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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