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의 날 축제 갖은 악기의 향연

분석과 사고 시리즈

2001년 1월

음악의 날 축제

갖은 악기의 향연

1982년 1월의 어느날 아침, 문화부의 음악국 국장인 모리스 플뢰레가 내게 전해준 보고서에는 프랑스인들이 소유하는 악기의 수가 400만개에 이른다고 적혀있었다. 그런데 약¾의 악기가 벽장, 다락, 지하실에 방치되어있으며 종 국에는 일반쓰레기와 같은 운명이 된다는 것이다. 나는 음악자산인 악기들의 운명이 정말 안됐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그 보고서는 결국 이 악기들을 회생시키는데 기여하게 되었다. 첼로, 기타, 트롬본, 팀파니, 트라이엥글, 큰북을 일년에 한 번씩 꺼내어 다듬어서 연주자 들에게 연주를 부탁하고 즐거움을 얻으면 어떨까? 그리고 이날만큼은 아마 츄어이던 전문연주가이던 악기를 들고 자유롭게, 실내, 실외, 광장, 회랑, 학 교나 병원의 뜰, 음악학교의 교정, 카페앞, 어디에서든 그저 연주의 즐거움을 위해 연주를 하면 어떨까? 이런 생각이 정해진 후에는 이 축제를 위해 날짜 를 잡고 이름을 붙히고 아름다운 숲 속의 잠자는 공주를 깨울 멋진 왕자님 이 나타나기를 기다리면 되는 것이었다.

1982년 6월21일 첫 음악의 날 축제가 개최되었다. 그런데 불어로 ’음악의 축 제’(fete de la musique)는 ’음악을 연주하세요’(faites de la musique)의 훌륭 한 동음어이다. 그리고 연중 가장 해가 긴 하지가 축제의 날로 결정이 되었 다. 성요한 축일과 그로부터 3일후에 있는 야간축제 기간이 후보에 올랐지만 최종적으로 하지가 선택되었다. 문화부의 음악국 국장이 바로 젊고 멋진 왕 자의 역할을 맡았다. 그리고 시민들 중에서 어떤 연유에서든 음악을 즐기지 않는 사람들이 이 행사를 밤중의 고성방가로 오해하지 않도록 시간은 밤 8 시30분에서 9시로 정해졌다. 수많은 음악회가 동시다발적으로 사방에서 열린 이 행사는 최초의 기록에 남을 만한 행사였다. 수많은 음악애호가들이 기념 관, 거리 광장에 넘쳐났다. 음악으로 들뜬 행복감은 북쪽 항구도시 칼레에서 망똥까지 가득했다. 파리에서는 프랑스 공화국 군악대가 말을 타고 오페라거 리를 행군하며 연주를 한 것을 필두로, 야외음악당에서는 어린이 합창단이 무반주로 플렝크와 브리튼의 합창곡을, 4중주단들은 브람스와 슈만의 실내악 곡들을 유서깊은 관저인 로앙이나 알브레저택에서 연주했고, 파리가극단 오 케스트라는 가르니에 오페라좌의 계단에서 베를리오즈의 환상교향곡을 연주 했다. 그런가하면 켈트족 연주단들이 몽파르나스 역앞 광장에 모여 연주를 하고 언론매체는 레피블리크광장, 바스티유광장, 트로카대로 광장 등에 단을 설치하고 카메라를 준비했다.

이 훌륭한 행사를 해마다 열기로 한 것은 좋은 생각이었다. 그 다음해에는 밤의 시간제한이 없어졌다. 벌써 올해로 18년째되는 음악의 날 행사는 이제 관습이 되어버렸다. 오케스트라, 군악대, 재즈그룹, 록그룹, 팝그룹, 테크노음 악, 월드뮤직, 펑크와 랩, 가스펠, 합창, 가요, 한지역에 알려진 음악가, 세계 여러 나라의 음악가등이 6월 21일에 음악을 연주하기 위해 모인다. 7월 14일 혁명기념일, 5월1일 노동절, 5월8일 전승기념일이나 마찬가지로 음악의 날은 기념일이 되었다. 6월21일은 젊은 나이에 순교한 세인트 루돌프의 성일이 아 닌 모든 음악의 축일이 되어버렸다. 일반 다이어리나 연말에 우체국에서 발 행하는 달력의 6월 21일난에 공식적으로 "음악의축일"이라고 찍혀있는 것도 아니고 휴일로 제정된 것은 아니지만 다른 경축일만한 위치를 차지하게 되 었다.

그렇다면 음악의 날 축제란 무엇인가?

음악의 날은 아마추어, 전문가 음악인들에게 원하는 장소에서 낮이나 밤이나 음악을 연주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주는 날이다. 이날만큼은 역의 대합실, 학교 교정, 성당이나 교회의 내부, 카페나 식당의 테라스, 시청의 계단, 기념 관, 경찰서, 작은 골목이나 아케이드 심지어 구치소등도 훌륭한 연주장이 되 는 것이다. 대중앞에서 노래하거나 연주하는 것이 두렵다는 소심한 아마츄어 들도 자유스럽게 이날은 축제에 참가한다. 게다가 문화부나 시및 지역자치단 체의 입장에서 볼 때 음악의 날은 별도의 예산을 필요로하지 않는다. 포스터 한장과 프랑스 전역에 걸쳐 음악회가 열리는 곳에 대한 목록, 전화, 인터넷 을 통한 홍보면 충분하고 이날은 저작권의 침해도 문제가 되지않는다. 도시 근교용 기차편이나 버스노선이 증편되고 지하철도 새벽까지 운행을 연장한 다.

해를 거듭하면서 아주 특별한 음악회들이 열리기도 했다. 철도 경로우대증 소유자들이 막다른 골목에 자리를 잡고 팔레스트리나와 구노의 곡을 열창했 는가 하면, 12세의 조숙한 바이올리니스트는 주파수 91.70의 프랑스음악방송 에 생중계되는 음악회에서 오케스트라와 협연을 하기도 했다. 대중음악 연주 가들이 병원에 가서 공연을 해주기도 했고 한 하모니카 연주가는 고대저택 의 정문앞에서 공연을 하기도 했다. 한 건물의 각각 다른층에서 두 피아니스 트가 슈베르트의 환상곡을 연주하기도 했고, 한 건물에서는 여성들이 창문을 열고 코스마의 "네가 그렇게 생각한다면"과 브라상스의 "오베르뉴 사람들"의 악보를 행인들에게 나누어주며 아코디온과 타악기반주에 맞춰 따라부르게 하기도 하였다. 그런가하면 미술관 건축현장에서 이디시노래가 불려지기도 했고, 특별히 이날을 위해 개방된 사원에서 폴란드 음악의 연주회가 열리기 도 했으며, 어떤 대사관의 문화원에서는 니켈하르파의 반주에 따라 스칸디나 비아가곡 음악회가 열렸다. 레피블리크광장에서 바스티유광장까지 마차를 타 고 내려가면서 히겔린은 "숨은 미인"이란 노래를 불렀다. 전철안에서는 포크 송공연이 있었고 한 중학교 교정에서는 재학생 한명이 퀸의 프레디 머큐리 를 모방하며 노래를 부르기도 하였다.

음악의 날 행사가 전혀 저항에 부딪히지 않은 것은 아니다. 가시적 효과를 노리는 반짝 행사일 뿐이라고 비난을 하는 음악전문가들도 있었고, 일부는 스폰서를 하는 메이커나 방송매체가 파리에서 열리는 쇼를 상업적으로 활용 하는 구실일 뿐이라며 비난하기도 했다. 어쨌든 이 행사는 모든사람들에게 모든 종류의 음악을 접할 기회를 주었다. 음악의 날은 별사고없이 1500개 이 상의 음악회가 하루밤에 치뤄지는 행사인 것이다.

세계적인 축제

이제 음악의 날 행사는 세계적인 축제로 발돋움하고 있다. 음악을 하는 것은 유쾌한 일이며, 음악은 언어와 문자를 초월할 수 있는 유일한 축제이기 때문 이다. 음악은 정치와 무관하며, 다양하고 민중적이며, 어느나라 사람이던 자 신도 모르는 사이에 음악애호가이기 때문에, 그래서 음악의 축제야 말로 최 초의 세계적인 축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2000년에 음악의 축제는 전세계 적으로 100여국이상의 나라에서 열렸다. 유럽연합내에서는 물론, 폴란드, 이 집트, 시리아, 모로코, 캄보디아, 베트남, 콩고, 카메룬, 토고, 칠레, 니카라구 아, 일본등에서도 개최되었다. 베를린의 브란덴브르크 문에서 환희의 송가가 연주되는 동안, 브뤽셀의 화폐광장에서는 전자음악이 연주되었고, 바로셀로 나의 거리에서는 200여개의 음악회가 거리에서 열렸으며, 아테네의 중심가에 서는 음악 퍼레이드가 진행되었고 이스탄불의 거리에는 "음악의 트럭"이 운 행되고 뉴욕의 전철서도 음악회가 열리고 샌프란시스코에서는 음악의 정신 이라는 제목으로 연주가 있었다.

이 음악축제는 이제는 전통으로 자리잡기에 이르렀다. 인류가 겪는 고통에 대해 생각해보는 기념일이 제정되는 것처럼 예술의 한분야에 대해 관심을 갖는 날도 제정되는 것이다. 프랑스의 경우, 9월 마지막 주말의 문화재의 날, 시인들의 봄, 영화제, 독서축제주간, 1991년 10월부터 시작된 1주일동안 진행 되는 과학의 축제, 9월 두번째 토요일의 테크노 음악 퍼레이드, 1988년 제정 된 세계 에이즈의 날 행사등이 있다. 이제는 성인들의 축일뿐만 아니라 이런 기념일과 축제들도 프랑스의 달력에 표시가 되고 일상적인 날들 사이에 특 별한 의미를 부여하게 될 것이다.

저자 : 크리스티앙 뒤파비용
건축가이며 문화사업국의 감사이다. 1982년 당시에 그는 문화부의 기술고문 이었다.
이글의 내용에 대한 모든 책임은 저자에게 있다.

publie le 09/08/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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